오늘은 게임하는 날 (2023.06.01)

발행인
2024-03-30

우리는 수 만명의 관광객이 깃발을 따라 몰려갔다 몰려 오는 

CROATIA 의 DUBRONVNIK 의 올드 타운 중심에 있다.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여러나라의 언어가 잡음처럼 창문으로 넘나든다. 

대개는 조금 들뜬 마음으로  주고 받는 소리들이다. 

뜻은 알 수 없지만 언어가 주는 분위기가 들떠 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우리도 지중해의 햇살 속에서 관광객들과 어울려서 

햇살을 피해 그늘이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서 차가운 음료를 마시거나 

해를 피하지 않고 똑똑 떨어지는 땀방울을 즐기면서 600년 전에 만들어둔 골목의 계단들을 

오르내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적당히 빛을 가린 방에 앉아 '도시를  만드는 게임이다. 


"불닭 빌리지는 인구가 몇 만 인가요?"

"김치 타운은 인구 증가가 빠르네요."

"불평만 하지 말고 세금을 내야 길을 확장해주지. 시장노릇하기가 쉽지 않네."

"고맙다는 말보다 불평이 많아. 길이 막힌다.. 공원이 더 필요하다. 경찰이 없어서 불안하다. 

칭찬은 소방대원들이 멋지다는 말 뿐이야. "


"망치가 5개 필요한데 불닭 빌리지에 혹시 있나요?"

"네 우리 망치 있어요. "

"그럼 마켓에 올려주세요. 글로벌 마켓 대신 로컬 마켓에 올려주세요."

"로컬 마켓에 올렸어요. 고마워요. 사 왔어요."

"김치타운에 분홍색 페인트 한 통 있나요?"

"지금 없는데 필요하면 만들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글로벌 마켓에서 찾아볼께요. "


이런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몇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으면 서너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물론 내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도시에는 그동안 인구가 2 만명 정도 증가하고 

그에 따라 상하수도 시설이나 쓰레기장을 늘리고 경찰과 병원, 소방서를 더 늘리고 

늘릴 때마다 빠져나가는 가상화폐를 벌기 위해서 도시에서 부지런히 공장을 돌려 

글로벌 마켓이 팔아야 한다.. 


SIM CITY 를 하며 쪽지랑 나랑 보낸 휴가의 하루다. 

몇 년 전에 유행한 게임이다. 

"언제 내가 이런 게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겠어요. 

휴가가 아니면 밥 먹는 시간도 내기 어려운데. 그래 오늘은 게임하는 날이다. "

우린 그렇게 하루를 놀고 밤엔 낮동안 열심히 만든 도시를 허물었다. 


'내가 오딧세이 부인도 아닌데 낮에 열심히 만들고 밤에는 부수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자투리 시간 사용'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게 된다. 

2-3분의 자투리 시간만 생겨도 게임을 열어서 한두 가지 물건을 생산하고 

몇 채의 집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를 모으게 된다. 

틈틈이 무슨 일이든 일관성 있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한다. 

되도록이면 그 일이 생산적인 일이면 좋겠다.

생산적인 일이 아닌 재미로 하는 일에는 

'시간 날 때., 쉬는 시간에 잠깐 잠깐 하는 것 뿐이야"

라고 자기를 합리화 하거나 꾸중하는 부모님께 변명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시간 날 때마다 하다 보면 그 일이 의외로 많은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아 간다.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시간까지. 


혼자 있는 시간, 잠깐의 여유 시간에 내가 무슨 일에 우선권을 두고 

무엇에 관심을 두는 지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 못지않게 나를 만들어가는,

나의 정체성을 키우는 요소가 된다.